일본의 주요 역사학자들이 참석한 한일 고대사 워크숍에서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에 한반도의 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하며, 이전에는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하게 대해왔던 한반도 문화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들의 인식 변화는 목간 유물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목간은 한반도와 일본의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나무 쪽문서로, 물품 출납기록이나 관공서 행정기록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난 100년간 일본 각지에서 30만 점 넘게 출토되어 일본 학자들이 이를 비교 분석하면서 인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일 고대사 워크숍은 한국의 목간 연구 성과를 일본 학계와 나누고, 일본의 한국 목간 연구를 소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이번 워크숍에서는 이치 히로키 오사카대 교수가 일본 7세기 목간과 한국의 고대 목간을 비교연구한 결과,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에 한반도 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https://m.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80256.html#cb
열도에서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며 국가와 문명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계기가 백제가 멸망 후 열도로 망명하면서부터입니다.
일본 나라현 지사
"일본은 백제로부터 매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문화로드, 역사거리 등 하드웨어를 만들어 후세 사람들에게 역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인터넷 세대 가운데 과거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는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교류 거점이었던 곳이 나라현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 가지 고고학적 발견이나 문헌해석 등을 통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역사 벨트의 중계 중심지는 역시 백제였습니다. 이런 실체를 명확하게 하고, 잃어버린 백제의 의미를 찾는 것이 나라현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6-9세기 교류는 일본에서 그다지 중요시되고 있지 않지만 백제 도래인을 통해 오늘날 일본의 높은 문화·지식·생활이 탄생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고대 백제는 일본의 문화창조지, 중계지로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열도는 소가씨라는 백제계 귀족과 백제계 왕들이 열도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백제계만 일본을 지배한 게 아닙니다.
삼국시대 말기에 문무왕 신라는 열도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며 열도에 친 신라 정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게 고토쿠 일왕 (다이카 개신으로 백제계 사이메이를 몰아냄), 덴무 일왕 (당과 백제계를 몰아낸 임신의 난)
이때 열도는 신라에 의해 율령과 행정 체계가 만들어지며 국가다운 국가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무왕이 죽으면서 다시 백제계가 열도의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일본이 신라에 대해서 유독 악의적이고 적대적인 이유가 백제계가 최종적으로 일본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신라와 오랫동안 수교를 했었고 신라에 강한 영향을 받은 국가인건 틀림이 없습니다.
일본의 통일신라에 대한 조공 기록
효소왕(孝昭王) 7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으므로, 왕이 숭례전(崇禮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三月, 日本國使至, 王引見於崇禮殿.)
성덕왕(聖德王) 2년,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모두 204명이었다. (日本國使至, 摠二百四人)
성덕왕(聖德王) 30년,
일본국 병선 300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의 동쪽 변경을 습격하였는데, 왕이 장수를 시켜 군사를 내어 이를 크게 깨뜨렸다. (日本國兵船三百?, 越海襲我東邊, 王命將出兵, 大破之.)
경덕왕(景德王) 원년,
겨울 10월에 일본국(日本國) 사신이 이르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元年冬十月, 日本國使至, 不納. )
경덕왕(景德王) 12년,
가을 8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왕이 그들을 접견하지 않자 마침내 돌아갔다. (十二年秋八月, 日本國使至, 慢而無禮, 王不見之, 乃廻.)
애장왕(哀莊王)
5년 여름 5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와 황금 300량을 바쳤다. (五年夏五月, 日本國遣使, 進黃金三百兩.)
애장왕(哀莊王) 7년,
봄 3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으므로 조원전(朝元殿)에 불러 접견하였다.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되, 다만 수리하는 것은 허락한다. 또 수놓은 비단을 불교 행사에 사용하는 것과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의 사용을 금한다. 마땅히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이를 널리 알려 시행하도록 하라.』(七年春三月, 日本國使至, 引見朝元殿. 下敎禁新創佛寺, 唯許修葺. 又禁以錦繡爲佛事, 金銀爲器用, 宜令所司, 普告施行.)
헌강왕(憲康王) 8년,
여름 4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00량과 야광주[明珠] 10개를 바쳤다. (八年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일본은 신라의 따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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