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좌파 586 운동권 애들이 대학생때 한짓들...고문,살인

사선탐정 2023. 5. 12.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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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1989년 10월 15일, 연세대에서 일어난 고문치사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비참한 대학 내 폭력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동양공전 대학생인 설인종 군은 연세대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다가 반 운동권적인 발언을 하던 바람에 연세대 학생명단에 없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연세대생들은 그를 대학에 침투한 경찰의 쁘락치로 단정 짓고 무자비하게 각목으로 폭행하고 물고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연세대생뿐만 아니라 고대 학생들도 고문에 가담해 사건은 더욱 심각한 규모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설인종 군은 고문과 학생들의 폭력으로 인해 결국 사망하게 되었으며,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큰 충격을 일으켰습니다.

부산외대 김태수 음독사건

1989년,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불법적인 고문을 받고, 이에 따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국어국문과 4학년 휴학생인 김태수 군은 부산, 울산지역 총학생회 연합 간부들에게 단지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쁘락치로 몰려갔습니다. 그리고 불법 감금을 당하면서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해당 학생회는 전대협 사다바리였습니다.


김태수 군은 감금에서 풀려나 자택으로 돌아왔지만, 당시에는 이미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처지를 비관하며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김태수 군은 중태에 빠졌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합니다.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1984년 9월 서울대에서는 민간인 납치·고문 사건이 일어나면서, 대중들은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

당시 서울대 운동권 학생들은 지나가던 민간인 4명을 경찰 쁘락치로 여기고 납치, 고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피해자는 모두 대인기피증 등 큰 트라우마를 앓게 되었고, 한 명은 정신분열증까지 앓게 되었다.

특히, 이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은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전 씨라는 이유만으로 더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것이 알려져 더욱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

1997년에는 전남대에서 고문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전남대 졸업생 이종권 군은 가명을 쓰고 전남대 학생 행세를 하며 다녔다. 그러던 중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지부 중 하나인 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 이하 남총련 간부들이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그를 납치해 경찰 쁘락치로 고문했다.

이들은 극렬 친북 NLL계열 운동권으로 추정되며, 이종권 군을 소주 12병을 마시고 구타했으며, 쇠파이프로 공격하는 등 고문 방식은 매우 잔인했다. 그리고 이종권 군의 사인은 강제로 먹인 소화제에 의한 질식사였다. 이들은 시신 은폐를 시도했지만, 결국 발각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7명이 기소되었으나 총가해자의 수는 18명이며, 고작 징역 6년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이들 가해자 중 한 명인 전남대 총학생회 섭외부장은 이후 20회에 걸친 연쇄 강도, 강간, 강도살인을 저질렀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범죄 역사가 있었다.

이석 고문치사 사건


1997년 6월 4일, 서울 한양대학교 캠퍼스에서 한양대 한총련 간부들이 지나가던 선반기능공 이석(당시 23세)군을 다짜고짜 납치하고 경찰 쁘락치임을 자백하라며 고문을 가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이석 군이 "남총련 사무실이 어딘가요?"라고 묻기만 했는데, 한총련 간부들은 이를 "이 새키 대학생이 아니구나"라고 짐작하고 무작정 납치, 고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문 방식은 코에 최루분말 뿌리기, 침낭으로 감싸 물을 뿌리며 경찰 진압봉으로 멍석말이하기 등이었습니다.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은 '지금은 전쟁상황이니 인륜 따위 생각할 겨를 없다'며 고문을 독려하였으며, 가해자들의 이름은 찾아보면 모두 나옵니다.

하지만 이석 군은 그만 사망하였고, 가해자들은 시신 은닉을 시도하였으나 발각되었습니다. 가해자들은 총 15명으로 한양대생, 건국대생, 단국대생, 명지대생, 전남대생 등 소속이 다양했습니다. 이들은 최고 징역 7년, 최소 징역 1년 등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가해자 몇 명을 얼마 안 가서 사면, 복권시켜 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으며, 이 사건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사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김호라는 사람은 미군을 상대로 묻지 마 칼부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위 사건들에 나오는 가해자들은
몽땅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몇 명은 정치계에 당당히 입문하고
지금도 현역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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